<혐오사회/카롤린 엠케> - 영화 <범죄도시>에 제시된 한국의 혐오, 제노포비아에 대하여 ㄴ독서

맹추위가 들이닥치기 전인 10월 말 즈음, 직무관련 도서 말고도 나의 시선을 잡아끈 도서가 있었다. 여성혐오살인, 몰카, 소라넷 등으로 열띤 논쟁의 축이 되고있는, 단연 2017년의 키워드라고 해도 무방한 "혐오"가 쓰여진 빨간 표지의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읽고 느낀 것을 최근 유행어를 쏟아내며 대중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든 영화인 <범죄도시>의 분석에 적용하려 한다. 즉, 한국의 혐오 카테고리 중 하나인 제노포비아는 어떻게 <혐오사회>의 틀로 관찰하는지 <범죄도시>의 예를 들어 분석하겠다.

우선 <혐오사회>를 살펴보자. 전세계 분쟁지역을 취재해 온 카롤린 엠케는 저널리스트로서의 권위자인 자신과 여성, 레즈비언으로서의 약자인 자신의 양자적 자아를 이 혐오를 분석하고 파르헤지아로 맞서는 사회과학작품에 녹여내었다. 우선 목차만 살펴보아도 그가 명쾌한 사회과학적인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글에는 푸코와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의 석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녹아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걱정"이 혐오가 되는지, 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동일시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시볼레트"로 차별화시키는 게 왜 혐오가 되는지 어렵지 않게 풀어내었다.

다음으로 카롤린 엠케의 눈을 빌려 한국의 제노포비아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도 중 하나는 영화 <범죄도시>에 대한 몇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결말에 대한 의문이다. "그래, 조선족 범죄자들 여러 명 검거했다...그리고 끝?"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진선규의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라는 수상소감이었다. 나는 여기서 그 배우의 대한민국 "국민"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무수한 혐오 중 "굳이" 제노포비아에 집중한 이유는 물론 현 시점의 한국에서는 여성혐오가 핫이슈이지만 우리사회에 더욱 부각되지 않고, 한국 남성뿐만 아니라 한국여성들도 혐오의 틀을 재생산하고 있는 "조선족" 또는 "다문화"로 대표되는, 가장 약자로서의 "한국 내 외국인 민족"에 대한 제노포비아를 다루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혐오사회>에서 제시된 카롤린 엠케의 무수한 분석틀 중 내가 집중하고 싶은 건 "동질성"의 개념이다. 카롤린 엠케에 의하면 "동질성"은 국가, 민족의 개념이며 주로 사회의 메인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독일인은 게르만민족이다',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위의 명제가 동질성으로서 축조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동질성은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동질성 개념이 가장 잘 녹여진 한국의 대표명제는 아직도 교과서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명제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대다수가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대한민국에 있는 다른 민족과 인종: 영국인, 프랑스인, 베트남인, 태국인, 조선족은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국민일 수 있는 기회를 부정하는 매우 인종차별적이고도 폭력적인 명제이다. 이렇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종차별적 이념을 지원하고 제노포비아를 생산하니 그 국가에 속한 시민은 '한국인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제노포비아적 사상에 세뇌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배우 진선규의 수상소감인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문장은 "조선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며,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는 혐오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외국인 농구선수가 귀화할 때 "한국스러운"이름인 김진수나 전태풍과 같이 이름을 바꾸도록 강요당하는 것 또한 이런 사상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동질성은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가 생산해내는 동일한 사고의 틀이라는 맥락에서 제노포비아를 조장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이 일으킨 범죄건수가 백인보다 적은데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흑인범죄만 집중조명하는 것, 유럽에서 난민범죄가 극소수인데도 불구하고 난민범죄가 마치 유비쿼터스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범죄도시>는 장첸을 통해 "조선족"민족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불법적으로 한국에 들어왔으며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민족, 한시바삐 유치창에 감금해야만 하는 민족이라는 "동일한" 혐오사고의 틀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조선족" 하면 범죄, 칼, 살인, 구속과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는 현상과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엠케는 단 하나의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동질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그렇게 동질화 된 시민에게 남는 것은 미리 만들어진 묘사와 평가에만 의지해 작동하는 축소된 사고뿐이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또한 극단적 이슬람 단체인 ISIS가 사용하는 이슬람 경전들의 프로파간다에 대해 "문장들이 포함된 더 넓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개의 문장을 인용하고, 따로 떼어낸 단락들을 읽고 사용하면서도 전체 텍스트가 처한 배경은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동질화된 자아와 그로 인한 전체적(holistic)사고의 부재가 결국 혐오의 바탕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시민으로서의 대한민국 국민은 아직은 국가와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는 동일한 사고의 틀에서 해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사람은 당연히 한민족이다", "조선족 범죄 조심해야지"와 같은 명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국가주도의 "동질화"에 의해 국가 내에 존재하는 다른 민족에 대해 제노포비아적/배타적으로만 생각하도록 사고가 축소된 것은 아닐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나 프로파간다가 제시하는 민족에 대한 배경에 대해 사고하지 않고 마냥 '조선족 말투가 웃기다며'유행어를 퍼나르기에만 급급하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이 제노포비아적 혐오의 틀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 혐오의 연결고리가 이해가 안 된다면 엠케의 작품을 탐독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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